우루크(Uruk)는 기원전 4천년경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형성된 인류 최초의 도시 중 하나로, 문자의 발명과 도시 문명의 발전을 이끈 중심지이다. 유프라테스 강 근처에 위치해 농업과 무역이 번성했으며, 길가메시 서사시의 배경이 된 전설적인 도시다.
고대 도시 우루크의 유적이 있는 곳을 와르카(Warka) 유적지라고도 부르는데, 현대 이라크 남부의 알 무타나 주에 위치해있다. 사마와(Samawah)에서 남동쪽으로 약 3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우루크는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인안나(Inanna)를 주신으로 모셨다. 인안나는 이슈타르(Ishtar)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우루크의 역사
우루크의 기원
우루크는 기원전 4천년경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 당시 메소포타미아는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사이의 비옥한 땅으로, 초기 농업 사회가 발달하기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 농업이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은 점차 정착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우루크와 같은 초기 도시가 형성되었다.
우루크 시대
초기 우루크 시대 (기원전 4000년경)
우루크는 초기부터 급격한 성장을 보였다. 기원전 4000년경, 작은 마을에서 시작하여 점차 도시로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는 간단한 진흙 벽돌로 만든 건축물이 주를 이루었으며, 주민들은 주로 농업과 목축에 종사했다.
중기 우루크 시대 (기원전 3500년경)
중기 우루크 시대에는 도시의 규모가 더욱 확대되었다. 이 시기 우루크는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로 성장하였으며, 인구도 급증했다. 주변 지역과의 교역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고, 이를 통해 도시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후기 우루크 시대 (기원전 3000년경)
후기 우루크 시대는 우루크의 황금기로 여겨진다. 이 시기 우루크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큰 도시로 성장하였으며, 인구는 수만 명에 달했다. 우루크의 지구라트와 같은 대규모 건축물은 이 시기의 번영을 잘 보여준다. 또한, 설형문자의 발명과 사용은 우루크의 행정과 문화를 더욱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초기 왕조 시대 (기원전 2900년경 ~ 기원전 2350년경)
우루크의 황금기가 지나고 초기 왕조 시대 동안 우루크는 독립적인 도시 국가나 왕조로서 번영하기도 했고, 우르, 키시, 라가시와 같은 강력한 도시 국가 및 왕조들과 경쟁하며 때로는 이들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수메르 왕 목록’에 의하면 초기 왕조 시대에 우루크는 세 번의 왕조가 있었는데, 제1왕조와 제2왕조는 우르에게 각각 정복 당했고, 라가시와 키시 등 수메르(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주요 도시 국가를 정복했다고 전해진 우루크의 제3왕조는 아카드 제국을 세운 사르곤 대왕에게 정복 당했다.
아카드 제국 이후
기원전 22세기경 구티인의 침입으로 아카드 제국이 무너지면서 우루크는 다시 독립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구티 왕조에 의해 우루크 제4왕조는 멸망했다.
우투-헤갈이 구티 왕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우루크의 왕으로서 제5왕조를 세웠지만, 우투-헤갈이 죽자 우르의 총독이었던 우르-남무가 기원전 2112년경 우르 제3왕조를 창설하고 우루크를 포함한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통합하였다.
이후 역사
우루크는 우르 제3왕조에 의해 통합된 이후로 독립적인 왕조가 사라지고, 도시로만 남게 되었다. 우르 제3왕조 시기에는 경제적 번영을 누리다가 이후 차츰 쇠퇴가 시작되었다. 신 바빌로니아 제국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통치 하에 우루크는 잠시 재기하였으나, 바빌로니아 제국의 몰락과 함께 우루크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사산 제국 시대(서기 224년경 ~ 서기 651년경)에 이르러 우루크는 이미 상당히 쇠퇴한 상태였다. 고대 도시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주요 인구와 경제 활동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 사산 제국 시대 말기에는 우루크가 더 이상 주요 도시로서의 기능을 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폐허로 남게 되었다.
우루크의 주요 왕들
고고학적 자료가 부족하여 역사성은 불확실한 경우가 많으며, ‘수메르 왕 목록’과 메소포타미아 문학, 신화에 등장한다.
엔메르카르 (Enmerkar)
엔메르카르는 우루크 왕조의 초기 왕 중 하나로, 통치 시기는 기원전 27세기로 추정된다. 이는 엔메르카르라는 이름이 기록된 고대 문서와 서사시, 특히 엔메르카르와 아라타의 왕과의 대결을 다룬 이야기들에서 비롯된 추정이다.
엔메르카르 (Enmerkar)라는 이름은 ‘우루크의 건설자’ 또는 ‘우루크의 군주’로 이해할 수 있다.
루갈반다 (Lugalbanda)
루갈반다는 우루크의 신화적 왕으로, 주로 서사시와 신화에서 전해진다. 기원전 26세기경에 통치한 것으로 전해지며, 엔메르카르의 아들이자 길가메시의 아버지로 알려져있다.
루갈반다 (Lugalbanda)라는 이름은 ‘루갈(왕)’과 ‘반다(작은/어린)’으로 해석되며, ‘젊은 왕’을 의미한다.
길가메시 (Gilgamesh)
우루크 왕조에서 가장 유명한 왕은 길가메시로 신화와 서사시에서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학 작품 중 하나로 평가 받으며, 어머니는 여신 니신(Ninsun), 아버지는 우루크의 왕 루갈반다로 반은 신, 반은 인간으로 묘사된다.
길가메시는 우루크를 강력한 도시 국가로 만들었으며, 그의 친구 엔키두와의 모험과 불사의 추구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루갈자게시 (Lugalzagesi)
루갈자게시는 우루크와 우마(Umma)의 통치자로 알려져있다. 통치 시기는 대략 기원전 2350년에서 2335년 사이로 추정된다. ‘수메르 왕 목록’에 우루크 제3왕조의 왕으로 기록되어있다.
루갈자게시는 수메르 지역의 여러 도시 국가를 정복하고 통일을 시도했으나, 사르곤 대왕에게 패하고 사로잡혔다.
우투-헤갈 (Utu-hegal)
우투-헤갈은 우루크 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구티 왕조(Gutian Dynasty)를 물리치고 수메르를 재통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2119년부터 2112년까지 통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투-헤갈의 통치는 비교적 짧았지만, 수메르 문명의 부흥을 이끌었으며, 이후 우르 제3왕조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우투-헤갈의 비문과 기록에서 태양신 우투(Utu)의 축복을 받은 인물로 묘사된다.
우루크 유적지
우루크(Uruk) 유적지는 현대 이라크의 알 무타나 주(Al-Muthanna Governorate)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남부 지역에 해당하며, 현재의 유프라테스 강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우루크 유적지는 ‘와르카(Warka)’라고도 불리며, 우루크의 아랍어 발음에 기반한 명칭이다.
아누 지구라트 (Anu Ziggurat)
아누 지구라트는 기원전 4천년경부터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며, 하늘의 신 아누(Anu)에게 바쳐진 계단식 신전이다. 이 신전은 우루크 시민들의 종교적 의식과 제사가 이루어지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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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발전
아누 지구라트(Anu Ziggurat)의 건설은 기원전 4000년경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기원전 3000년경에는 아누 지구라트 위에 백색 신전(White Temple)이 추가로 건설되었다. 백색 신전은 하얀 석고로 덮여 있어 ‘백색 신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신전은 우루크의 황금기 동안 중요한 종교적 중심지로 번영했다.
아누 지구라트의 건축적 특징
지구라트는 여러 층의 계단식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층은 점점 작아지는 형태로 쌓여 있다. 이 구조는 지구라트를 견고하고 높게 만들었으며, 주로 진흙 벽돌과 석재를 사용해 건축 되었다.
지구라트의 가장 상단에는 하얀 석고로 덮인 백색 신전이 위치하여 멀리서도 눈에 띄게 설계되었다. 아누 지구라트는 당대의 기술로는 거대한 규모로 지어졌으며, 주변 지역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중 하나였다.
아누 지구라트 유적지
20세기 초 독일 고고학자들이 우루크 유적지를 발굴하면서 아누 지구라트도 함께 발견되었다. 이 발굴 작업은 지구라트의 구조와 기능을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많은 중요한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에안나 신전 (Eanna Temple)
에안나 신전(Eanna Temple)은 주신 인안나(Inanna)를 숭배하기 위해 지어졌으며, ‘하늘의 집’을 의미한다. 인안나는 사랑, 전쟁, 풍요의 여신이다.
인안나는 다른 이름인 이슈타르(Ishtar)로도 불리며, 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 널리 숭배되었다.
역사적 배경
에안나 신전은 기원전 4천 년경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루크는 당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였으며, 인안나 신전은 이 도시의 종교적 중심지였다.
우루크의 고대 문명은 에안나 신전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초기 도시 국가 형성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건축 양식과 구조
에안나 신전은 대규모의 석재와 벽돌을 사용하여 건설되었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확장되고 재건축되었다. 신전의 주요 구조는 직사각형 형태로, 많은 신전과 건물들이 복합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고고학적 발견과 연구
에안나 신전의 발굴 작업은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발굴을 통해 많은 유물과 건축물들이 발견되었으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종교와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신전에서 발견된 유물 중에는 인안나를 상징하는 조각상과 석판, 그리고 다양한 종교적 물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유물들은 인안나 여신의 숭배와 관련된 의식과 전통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에안나 신전과 관련된 유물
대영박물관 (British Museum)
◇ 동상 (Figurine): 우르-남무(Ur-Nammu) 왕이 인안나 신전 건축을 기념하여 만든 구리 합금 동상
이라크 박물관 (Iraq Museum)
◇ 인안나 신전의 정면 (Facade of Inanna’s Temple): 인안나 신전의 외관 일부로, 남성과 여성 신들이 물을 붓는 모습이 묘사된 벽돌 조각
◇ 우르크 여인상 (Mask of Warka): ‘우르크의 여인’ 또는 ‘인안나의 마스크’로 알려진 석회암 조각상
페르가몬 박물관 (Pergamon Museum)
◇ 핀 모자이크 벽지: 에안나 신전 안뜰의 받침대 정면 일부
세인트 루이스 아트 박물관 (Saint Louis Art Museum)
◇ 재판 기록 석판 (Tablet with an Account of a Trial held at the Eanna Temple): 에안나 신전에서 열린 재판을 기록한 석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