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고대 도시 3 – 바빌론 (Babylon) 고대 문명의 중심

바빌론은 메소포타미아 중부에 위치한 도시로, 바빌론의 위치는 오늘날의 바그다드 남쪽 약 85km 정도 떨어진 곳에 해당한다. 이 도시는 유프라테스 강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 덕분에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로 번성할 수 있었다.

바빌론에는 수메르, 아카드, 아모리, 페니키아, 이집트 등 다양한 지역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이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융합되는 환경을 조성했다.

바빌론의 전성기는 고 바빌로니아 왕국과 신 바빌로니아 제국 때로 네부카드네자르 2세(기원전 605-562년) 치세 동안 절정에 달했다.

바빌론
바빌론 (AI 이미지)

바빌론의 명칭과 의미

바빌론은 초기에 수메르어로 카딩기르(Ka-dingir-ra)로 불렸으며, 이는 ‘신의 문’이라는 뜻이다.

아카드어로는 Bāb-ilim → Babili → Babilu 로 변형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명칭은 수메르어 명칭과 마찬가지로 ‘신의 문’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후 그리스어 Βαβυλών (Babylōn)를 거쳐 현대 서양 언어들의 ‘Babylon’ 표기가 되었다.

주요 역사

초기 역사

바빌론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기록은 기원전 23세기경으로 올라간다. 아카드 제국의 샤르 칼리 샤리(Shar-Kali-Sharri) 통치 시대의 점토판에 바빌론이 언급되는데 당시에는 단순히 작은 종교 및 문화 중심지에 불과했으며, 아카드 제국에 속한 도시는 아닌걸로 보인다.

아카드 제국이 붕괴한 후, 남부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한 구티 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우르 제3왕조 시기(기원전 2112년경 ~ 기원전 2004년경)에 우르 제3왕조의 행정과 경제 체제 속에서 점차 발전하였다.

고 바빌로니아 왕국 시대 (기원전 1894년경 ~ 기원전 1595년경)

바빌론은 기원전 1894년경에 수무-아붐(Sumu-abum)이 바빌론에서 왕조를 시작하면서, 일반 도시에서 고 바빌로니아 왕국(바빌로니아 제1왕조, 아모리 왕조)이라는 도시 국가가 되었다.

기원전 1792년 ~ 1750년경 함무라비가 통치하면서 고 바빌로니아 왕국은 메소포타미아의 강국이 되었고, 바빌론은 바빌로니아 왕국의 수도로서의 지위를 확립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카시트 왕조 시대 (기원전 1595년경 ~ 기원전 1155년경)

히타이트가 바빌론을 함락 하면서 약 1년 정도 지배했고 이후 카시트족이 바빌론을 지배하면서 바빌론을 재건하고, 문화와 학문이 발달하였다. 이전의 아모리 왕조만큼 강력하지는 않았으나, 여전히 중요한 문화적, 종교적 중심지로 남아있었다.

카시트 왕조 시대 이후 신 바빌로니아 제국이 세워지기 전까지 엘람인, 이신 왕조, 아시리아 제국 등 다양한 세력들이 바빌론을 지배하거나 영향을 미쳤다.

신 바빌로니아 제국 시대 (기원전 626년 ~ 기원전 539년)

바빌론은 기원전 7세기에 나보폴라사르가 신 바빌로니아 제국을 세우면서 제국의 수도로 다시 번영하기 시작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 시대에 문화적,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하면서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특히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 의해 도시가 대대적으로 재건되면서 이슈타르 문, 에테멘앙키, 공중 정원 등 웅장한 건축물들이 많이 세워졌다.

신 바빌로니아 제국 시기의 바빌론은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모든 면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중심지였으며, 고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꼽혔다. 이 시기의 영광은 후대에 바빌론을 신화적인 도시로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역사

기원전 539년, 아케메네스 제국(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대왕은 바빌론을 정복하였다. 바빌론은 키루스 대왕의 정복 이후에도 행정 중심지로 사용되었는데, 특히 겨울 수도로 이용되었다.

기원전 331년, 알렉산더 대왕이 바빌론을 정복하면서 바빌론도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헬레니즘 시대의 바빌론은 정치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은 다소 감소했지만, 문화적, 종교적, 경제적으로 여전히 중요한 도시였다. 그리스-동방 문화의 융합지로서 헬레니즘 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 셀레우코스 제국 시대 까지는 중요한 도시로 남아 있었다가, 파르티아 제국 시대 이후 바빌론의 중요성이 점차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사산 제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바빌론의 쇠퇴가 가속화 되었다.

기원 후 7세기경, 이슬람 제국이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하면서 인근에 쿠파와 바그다드 같은 새로운 도시들이 건설되었고 바빌론은 점차 잊혀져 갔다.

주요 왕들

수무-아붐 (재위: 기원전 1894-1881년)

수무-아붐은 고 바빌로니아 왕국(바빌로니아 제1왕조, 아모리 왕조)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수무-아붐의 재위 기간 동안 바빌론은 처음으로 중요한 정치적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수무-아붐은 바빌론 성벽을 건설하고 도시를 강화하여 후대의 번영을 위한 기초를 닦았다.

함무라비 (재위: 기원전 1792-1750년)

함무라비는 고 바빌로니아 왕국의 여섯 번째 왕으로, 바빌론은 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는 법전인 ‘함무라비 법전’으로 유명하며, 이는 세계 최초의 성문법 중 하나로 간주된다. 함무라비는 법과 질서를 통해 왕국을 통치 하였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나보폴라사르 (재위: 기원전 626-605년)

나보폴라사르는 신 바빌로니아 제국의 창시자로, 아시리아 제국을 몰락시키고 바빌론의 독립을 확립한 왕이다. 아시리아의 니네베를 함락시켜 제국의 종말을 가져왔으며, 바빌론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였다. 이로써 바빌론은 경제적 번영과 문화적 부흥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보폴라사르는 아들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게 왕좌를 물려주어 신 바빌로니아의 전성기를 이끌게 하였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 (재위: 기원전 605-562년)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유명한 왕 중 하나로, 신 바빌로니아 제국의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수도 바빌론을 화려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 대규모 건축 사업을 추진하면서 예술과 건축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대표적으로 바빌론의 공중 정원, 이슈타르 문, 에사길라 신전(마르둑 신전),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궁전이 있으며 바빌론의 공중 정원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여겨진다. 또한,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많은 유대인을 바빌론으로 데려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나보니두스 (재위: 기원전 556-539년)

나보니두스는 신 바빌로니아 제국의 마지막 왕으로, 쿠데타를 통해 왕위에 올랐다. 마르둑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바빌로니아 신앙 대신, 달의 신 난나를 중심으로 새로운 종교 개혁을 추진했다. 이는 바빌로니아 사회에 큰 반발을 불러왔다.

신 바빌로니아 제국이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에 의해 끝나게 되면서 바빌론은 이민족이 지배하게 되었다.

주요 건축물과 유적지

바빌론 유적지는 이라크의 힐라(Hillah) 근처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약 8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대부분 신 바빌로니아 제국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와 관련된 건축물들이다.

이슈타르 문 (Ishtar Gate)과 행렬 길

이슈타르 문
이슈타르 문 상상도 (AI 이미지)

이슈타르 문은 기원전 6세기경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 의해 건설된 바빌론의 주요 입구이다. 이 문은 바빌론의 주요 여신인 이슈타르에게 바쳐졌으며, 푸른 유약 벽돌과 사자, 황소, 용 등의 동물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이슈타르 문은 바빌론의 북쪽에 위치한 주요 입구로, 행렬 길(Processional Way)을 따라 에사길라 신전(마르둑 신전)으로 이어진다. 이 행렬 길은 신년 축제(아키투 축제)와 같은 중요한 종교 행사에서 사용되었다.​

이슈타르 문과 행렬 길 복원

이슈타르 문은 1902년부터 1914년까지 독일 고고학자 로버트 콜데웨이(Robert Koldewey)와 그의 팀에 의해 바빌론에서 발굴되었다. 발굴된 재료를 사용하여 1930년대에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Pergamon Museum)에서 복원이 완료되었다. 원래 이슈타르 문은 이중문 구조였지만, 박물관의 공간 제약으로 인해 더 작은 앞부분만 전시되어 있다.​

  • 복원된 이슈타르 문(페르가몬 박물관)
  • 복원된 이슈타르 문(페르가몬 박물관)
  • 사자 (바빌론 이슈타르 문)
  • 황소 (바빌론 이슈타르 문)
  • 용 (바빌론 이슈타르 문)
  • 이슈타르 문 유적지
  • 바빌론 행렬 길 복원 (출처 - 유네스코)
이슈타르 문 (페르가몬 박물관 복원)
복원된 이슈타르 문 (페르가몬 박물관)

에테멘앙키 (Etemenanki)

에테멘앙키는 “하늘과 땅의 기초”라는 뜻의 계단식 피라미드 형태의 지구라트로, 마르둑 신에게 바쳐진 건축물이다. 바벨탑 전설의 기원으로 여겨진다. 현재 거의 완전히 파괴되어 흔적만 남아 있으며, 고고학적 연구와 보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에테멘앙키
에테멘앙키 상상도 (AI 이미지)

에사길라 신전 (Esagila Temple)

에사길라는 “높은 집”이라는 뜻으로, 바빌로니아 신화의 주신 마르둑을 숭배하기 위해 지어진 주요 신전이다. 바빌론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로 바빌론의 내성에 위치하고 있으며 에테멘앙키와 인접해 있다.

에사길라 신전은 주신 마르둑의 거처로, 중심 사원과 여러 부속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중심 사원은 마르둑의 금 동상이 안치된 곳으로, 이곳에서 주요 종교 의식이 거행되었다.

또한 바빌론의 신년 축제인 아키투 축제의 중요한 장소로, 도시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현재 기초부만 남아있다.

에사길라 신전
에사길라 신전 상상도 (AI 이미지)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궁전 (Palace of Nebuchadnezzar II)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궁전은 신 바빌로니아 제국의 행정 중심지로 국가의 주요 행정 업무가 수행된 남부 궁전(행정 궁전)과 개인적이고 휴양적인 성격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북부 궁전(보조 궁전, 여름 궁전)이 있다.

남부 궁전(행정 궁전)은 매우 넓고 웅장한 건축물로, 여러 개의 방과 넓은 중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궁전은 주로 진흙 벽돌로 지어졌으며, 벽에는 다양한 벽화와 부조가 새겨져 있다. 궁전 내부는 화려한 장식과 예술 작품들로 꾸며져 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궁전 중 남부 궁전 상상도 (AI 이미지)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궁전남부 궁전 상상도 (AI 이미지)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궁전 중 남부 궁전 유적지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궁전남부 궁전 유적지

북부 궁전(보조 궁전, 여름 궁전)은 남부 궁전보다 작지만 여전히 상당한 규모로 추정된다. 왕의 개인적인 거주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과 공중 정원이 이 궁전과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도 있다.

바빌론 북부 궁전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궁전북부 궁전 상상도 (AI 이미지)

남부 궁전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여러 차례 발굴되었다. 현재 궁전의 유적은 부분적으로 보존되어 있으며, 발굴된 유물들은 이라크의 박물관과 국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북부 궁전은 남부 궁전에 비해 덜 광범위하게 발굴되었다.

바빌론의 공중 정원 (Hanging Gardens of Babylon)

바빌론의 공중 정원 (Hanging Gardens of Babylon)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지만, 실제 존재 여부와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쟁이 있다. 바빌론이 아닌 니네베에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바빌론의 공중정원 상상도
바빌론의 공중정원 상상도 (AI 이미지)

공중 정원은 기원전 6세기경 바빌론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전해진다. 자신의 왕비 아미티스를 위해 이 정원을 지었다고 한다. 왕비 아미티스는 메디아 출신으로, 고향의 푸른 산과 정원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왕비의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바빌론의 평지에 인공적인 정원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